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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웨자자오리(魏昭丽)
비탈을 따라 지어진 다섯 채의 목제건물과 아담한 정원, 고풍스럽고 아늑한 분위기가 도시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돌층계와 회색담장은 복구한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정원의 노목이 역사를 느끼게 한다.
5월의 가랑비를 맞으면서 필자는 충칭시 위중(渝中)구 치싱강(七星崗) 롄화츠(蓮花池) 38번지에 위치한 충칭(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옛터를 찾았다.
1910년 8월 한일합병 이후, 한민족은 민족의 자유, 독립을 쟁취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1919년 3월 1일. 한국에서‘3ㆍ1’ 독립운동이 발발했고, 9월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1932년 4월 29일, 한인 애국단원인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폭탄을 투척, 중국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를 척살하자 일본침략군은 상하이에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대거 수색, 체포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부득이 상하이서 자리를 떠야 했고 중국정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 1940년 9월 충칭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한국광복군 건설을 준비하는 한편 독립운동 및 광복 후 건국을 위한 준비 사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구지(舊址)로서 충칭의 옛터는 1992년 충칭시 정부의 비준을 받아 시급 문화유산 보호 지역으로 지정됐으며 1995년 2차세계대전 승리 50주년 즈음 복구돼 개방됐다. 당시 충칭시 정부 외사 사무실과 문화국 및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이 공동 추진으로 복구 사업이 진행되자 수많은 한국 기업체들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복구된 건물은 원래의 건축 구도를 유지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의 원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온난 다습한 기후와 건축물 수명을 감안해 2000년, 청사 옛터에 대한 2차 보수 공사를 했고 동시에 1호 청사의 2층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사 전시실을 마련했다. 같은 해 9월 17일, 광복군 창설 60주년 기념행사 때 재 개관 행사를 열었다.
쟈칭하이(賈慶海) 관장에 따르면 전두환, 노태우 전 한국대통령과 이수성, 이한동 전 총리, 이만섭 국회의장, 정몽준 FIFA 부회장,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 김신, 삼성그룹과 LG그룹의 회장 등 관계자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한다. 충칭에 온 한국인 거의 모두가 임시정부 옛터를 찾아 선인들의 유적을 참관한다는 것.
쟈 관장은 “평소엔 손님이 많지 않지만 진열실 구석구석을 살피고 또 충칭시와 한국 정부 및 민간 사이의 교류 추진 사항을 검토하느라 무척 바쁘다”면서 “이 유적지는 중한 양국 국민들의 친선을 도모하는 역사적 이정표이며 이해와 교류를 증진하는 창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