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잡지를 구독하
중국잡지가
출판한 기타잡지
  • 커버 스토리
중국호적제도 빗장 풀리나

중국은 아직 각 지역의 경제력을 통일시킬만한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 때문에 중국의 호적제도는 단시일 내에 급속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반드시 차츰차츰 순서에 따라 개선해야 한다. 복지제도의 보급과 도농 간의 격차를 줄인 다음에야 자유로운 인구이동이 가능하다. 때문에 중소도시에서 호적을 개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도시에서는 그 가능성이 없다. 현재 또 그럴 능력도 없다.

 

 

호적관리는 세계 각국이 실시하는 사회관리제도의 하나로‘민사등기 (民事登記)’혹은‘생명등기(生命登記)’,‘인사등기(人事登記)’로 불린다.

한편, 중국 호적관리제도의 핵심인 호구(戶口)의 작용은 미국의 사회보장카드, 한국의 호적등본과 유사하다. 호구에는 호적부 소지자의 기본정보, 예컨대 성명, 성별, 생년월일, 집주소 및 배우자, 자녀 등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중국에서 주거 자유를 제한하는 시금장치역할을 해 왔다.

지방부터 호적 개혁,  2020년엔 중국 전역 확대

중국서 호구(糊口)하려면 호구(戶口)를 잡아라!

글|리후이펑(李慧鵬)

1951년 7월, 중국 공안부에서「도시호적관리 시행 조례」를 실시하면서 중국의 도시호적관리제도는 기본적으로 통일됐다.

新중국 창건 초기,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는 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 노동력 태부족 현상으로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물려 들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출범한 호적법규인 「도시호적관리 시행 조례」는 국내 범위에서 국민의 이주 자유를 통제하지 않았다.

도농 호구구분제도로 무형의 장벽

건국 이후 도시 유동인구가 급증하면서 복지제도와 인프라시설이 주민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사회치안상황도 점차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상황의 악화를 막기 위해 1958년 1월,「중화인민공화국 호구등기조례」를 발표했다. 「조례」는 상주, 임시 거주, 출생, 사망, 전출, 전입, 변경 등 7개 분야의 인구등기 제도를 망라한 비교적 완전한 호적관리제도를 확정했다.「조례」의 발표는 농촌인구의 도시 진출을 통제하는 시금장치로 변했다. 이때부터 도시와 농촌이 분리된‘이원 경제모델’이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1958년이 중국 인구관리 제도의 분수령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959년부터 3년간 계속된 자연재해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양곡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중국은 기근의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이에 중국은 양적으로 제한된 양곡을 통일적으로 배급하는 대응책을 세웠다. 1963년 공안부는 국가차원에서 계획적으로 공급하는 배급 식량을 먹느냐 안 먹느냐에 따라‘농업호구’와‘비농업호구’를 구별했다. 호구구분제도의 실행은 농촌에서 태어난 자는 영원히‘시골뜨기’로, 도시에서 태어난 자는 영원히‘도시민’으로 살아야 했다.

그 후「호구 이전에 관한 공안부의 규정(초안)」(1964년 8월), 「호구 이전에 관한 공안부의 규정」(1977년 11월)이 잇따라 발표됐다.「규정」은 도시, 소도시(集鎭, 도시보다 규모가 작은 거주 지역)를 향한 농촌인구의 이주를 법적으로 통제했다. 이로써 농촌인구와 도시 사이에는 무형의 장벽이 생겨났다.

그러나 농촌인구를 도시 밖으로 격리시킨 상황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에 힘입어 중국의 경제는 차츰 호전됐고 식량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농촌에서‘가정별 도급책임제’를 실시한 후로 잉여 노동력이 도시에 몰려들면서 다시금 기존의 호적제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1984년에 이르러 호적제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84년 10월 중국 국무원은 상주호구(常駐戶口)를 올릴 수 있는 조건을 규정했다. 즉 ①소도시(集鎭)에서 노무, 장사,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농민과 그 가족성원이어야 한다. ②현지에 고정된 거처가 있다. ③경영능력이 있거나 혹은 유망 기업, 사업단위(事業單位)에서 장기적으로 사업에 종사한다. 상기 조건을 만족할 경우 상주호구 등록 수속을 밟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조건에 맞아 호적을 올린 농촌인구는 소수였고 많은 유동인구는 여전히‘시골뜨기’감투를 벗을 능력이 없었다. 이에 1985년 공안부는 만 16세 이상의 타지방 사람은 임시 거주 기간이 3개 월을 초과하면‘임시 거주증(暫住證)’(혹은 임시거류증이라 함)을 신청해 허가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1998년 8월, 공안부에서 작성한「현재 호적관리에 나타난 몇 개 문제에 관한 의견」이 국무원에서 채택됐다.「의견」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갓난아기가 부친 혹은 모친을 따라 호적을 올리는 정책을 실시한다. ②‘기러기부부(夫婦分居)’문제 해결에 관한 호구정책을 완화시킨다. ③ 도시에 투자하거나 기업체를 갖고 있는 자, 매매용 주택을 구매한 자 및 직계 친족이 일정한 조건을 구비할 경우 호적을 올려준다.

농촌, 도시 복지정책이 최대 관심사

1992년 8월 초, 저우밍(周明)은 그토록 원하던 도시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개학 즈음해, 저우밍이 학교로 떠나는 자리에는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너무 장하다. 우리 고장 출신치고 네가 처음 상품식량(商品糧, 상품으로 거래되는 식량)을 맛보게 됐구나.”육십 고개를 넘은 촌장은 저우밍의 손을 잡고 감격해 했다.

그 시기 도시민과 농민의 가장 큰 차이는 식량에 있었다. 곡물을 심는 농민은 수입이 적은 반면 대부분 직장인으로 있는 도시민은 수입이 많은 편이었다. 또한 도시민은 상품식량을 배당 받을 뿐만 아니라 기타 일용품 보조까지 누렸다. 그 뿐만 아니다. 이를테면 ① 공장은 도시민만 고용한다. ② 도시민은 적은 돈으로 정부의 주택을 임대할 수 있다. ③ 도시의 학교는 도시의 아이들만 모집하며 농촌아이일 경우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이러니 자연 도시인구는 흔히 농촌인구를 깔보고 천대했다.

도시호구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그 위에 부가된 각종 복지대우들이 매력을 부추겼다. 다시 말해 노동취업제도와 의료보장제도 및 교육, 자녀의 호적문제 등 많은 규정이 생겨났다. 이런 규정이 순전히 도시민의 이익을 중심으로 세분화되고 체계화 됐던 것이다.

베이징에 사는 이(李) 씨는 폐렴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베이징시 농업호구를 소지한 이 씨는 규정에 따라 신형 농촌합작의료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기준에 따라 청구 가능한 진찰비용이 전액의 35% 즉 350위안이다. 또 55%의 입원기간 청구 기준에 따라 청구 가능한 입원비용이 4950위안(3급 병원의 공제액이1000위안이므로 청구 금액 계산의 기수가 9000위안이 된다.)이다. 이로써 청구 총액은 5300위안이다.

그러나 이 씨가 베이징 호구를 소지했을 경우 그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베이징의 기본 의료보험에는 진찰과 입원 구분이 따로 없다. 3급 병원의 공제액은 1800위안이며 청구 기준이 85%수준이다. 이 기준에 따라 계산하면 총 7820위안을 청구할 수 있어 농촌호구를 소지한 경우에 비해 2520위안이 절약되는 셈이다.

부동산중개업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2008년 불경기일 때 베이징 중고주택시장에서 유일하게 가격 안정을 유지한 곳은 양질의 교육자원을 누리는 지역으로 일명‘수에취팡(學區房)’이라 불리는 곳이다. 한국의‘강남지역’과 같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베이징 중관촌(中關村) 지역과 일부 유명한 초등학교에 인접한 지역이다. 1970~80년대에 준공된 주택임에도 불구하고 100만 위안 이상의 고가로 팔렸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교육에 대한 중국인들의 집착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주택을 구매하여 호구를 올려야만 유명 학교의 모집자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일 경우 10만 위안 이상의 학교 선택비(擇校費)를 지불해야 한다.

호구에 적잖은 복지 사항에 따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태도는 달라졌다. 2008년 4월,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와 사회조사센터는 공동으로 이에 대한 설문조사(3518명의 응답자 중 젊은 세대가 90% 이상 차지)를 실시했다. 결과 77.1%가 “가장 좋기는 직장에서 호적을 해결해주는 것이지만 결코 호구가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고 답했다. 그 외 11.1%만이“호구는 직장선택의 결정적 요소다. 호구 해결이 가능한 직장을 선택할 것이다”고 답했다.

베이징의 경우 매년 졸업하는 타지방 학생 대다수가 베이징 주민으로 남으려 하고 있다. 그럴 경우 대졸 후 취직한 첫 직장이 베이징 호구 배정 정원수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호구 정원을 가지고 있는 직장은 대개 국유기업이나 정부기구로서 봉급이 높지 못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구에 내재된 의료, 교육 등 분야의 무형의 복지가 졸업생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현실이다.

설문조사는 또“대학교 졸업생의 경우 어느 정도의 연봉이 호구가 가져오는 영향을 메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67.8%가 연봉이 10만 위안을, 14.6%가 20만 위안을 초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임시거류증 폐지 등 호적 장벽 타파 흐름

2003년 7월 22일, 다년간 물의를 빚었던 임시거류증 제도가 선양(沈陽)에서 폐지됐다. 중국에서 처음 시행된 이번 개혁은 선양 내 50만 농민근로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들은 임시거류증을 수령하기 위해 매달 40위안의 수수료를 내면서 번잡한 수속과정을 밟아야 했던 시대와 작별을 고했다. 선양시 공안국 호적관리부서(戶政處) 허판(何凡) 부주임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임시거류증은 일정한 역할을 했으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 폐단이 날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임시거류증을 폐지하는 것은 대세의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임시거류증의 폐지는 호적제도 개혁과정에 괄목할 만한 성과다. 적어도 명의상으로나마 지역간의 제한을 타파했고 국민의 가치와 이익의 평등화를 구현했던 것이다. 거류증 개혁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장쑤(江蘇)성의 경우다.

2003년 5월 1일부터 장쑤성은 인구의 농업과 비농업 구분을 없앴고 실지 거주지에 따라 통일적으로 호적을 올려주었다. 동시에 ① 도시진출 인구에 대한 계획적인 배정관리 취소, ②‘농민호적을 도시민 호적으로 전환(農轉非)’하는 제도 폐지, ③ 신청자가 전입 도시에 거주하는 친척에 의탁해야 하는 기존의 규정 폐지, ④ 현(縣)급 시는 합법적인 고정 주소 및 안정된 직업 조건에 근거해 호적을 올려주며 기타 조건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소식이 발표되자 언론들은 이를‘중국 호적개혁의 이정표’라고 높이 평가했다. 장강삼각주 경제사회발전연구센터 장닝(姜寧) 부주임은“장쑤성의 규정은 가장 완벽하게 기존호구의 성격을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석자 얼음은 하루 이틀에 언 것이 아니다. 물론 일시 노력으로 두꺼운 얼음을 녹여낼 수도 없는 일이다. 선양의 경우 임시거류증을 폐지한 데 반해 취업, 교육, 결혼과 출산 등을 주관하는 부서들의 조치가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 비추어 선양시 공안국은 일시 대책으로 부득불‘임시거류 증명’을 작성해야 했다. 기존의‘임시거류증’과 차별화하기 위해 또 ① 거주증명은 강제성이 없다. ② 필요로 하는 자가 신청하면 파출소에서 제공한다. ③ 절대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등 규정을 동시에 마련했다.

장쑤의 경우에도 유사한 상황이 나타났다. 호구의 명칭이 통일되었지만 도농 간의 경제발전 격차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도시의 복지를 누리려면 호적부의 상주주소가 현지 주소로 되어야 하며 또 안정된 직장이 있어야 했다. 이 두 개 조항만으로도 농민들을 뒤로 물러나야 했다. 결국 주택 구매력을 가진 농민은 양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고 안정된 직장을 찾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폭넓게 추진되는 개혁이 이로 인해 걸음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2008년 말까지 이미 13개 성, 자치구(허베이, 랴오닝, 장쑤, 저쟝, 푸젠, 산둥, 후베이, 후난, 광시, 충칭, 쓰촨, 산시, 윈난)가‘농업호적’과‘비농업호적’의 차별을 없앴다. 이 가운데 개혁 진행이 순조롭지 못한 지역도 있었다. 허난(河南) 정저우(鄭州)의 경우 단기간 내 유동인구의 급증으로 초래된 양로, 의료보험, 교육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원인이 돼 호적개혁은 실행한지 1년 만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도농 격차가 줄어들면서 호적개혁이 추세로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저장, 광둥, 상하이, 선전의 경우 거주증(居住證)으로 임시거류증을 대체했다. 또한 호구의 일부 기능을 구비함과 아울러 일정한 조건에 부합될 경우 정식 호구를 올려주기로 약속했다. 저장성은 올 6월 1일에 규정을 발표해 저장성 임시거주증(臨時居住證)을 소지한 자도 사회보장, 공공서비스 등 구체적인 대우를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정은 또 저장성 거주증을 소지한 주민이 현 급 이상 정부의 규정에 부합될 경우 상주호구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공대 후싱더우(胡星斗)교수는 중국의 호적제도개혁은 일반적인 개혁도 중요하지만 더 넓은 의미의 개혁도 중요시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넓은 의미의 호적개혁이란 호적등기와 교육, 의료 등 부가적인 개혁과 병행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렇게 해야 권리의 평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1992년에 중국 국무원은 호적제도개혁 추진방안 전문팀을 구성해 이듬해 6월에 호적제도개혁 총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① 농업, 비농업의 이원 호구차별 폐지 ② 도농 호구등기제도 통일 ③ 거주지에 호구를 올리는 원칙 실행 ④ 합법적인 고정 주소, 안정된 직장 혹은 경제요인을 호구를 올리는 조건으로 취급 ⑤ 호구이전정책을 조정하는 등 개혁목표를 제기했다. 이 같이 지방에서부터 호적개혁을 거친 후 2007년 공안부는 ① 중국은 향후 도농 통일의 호구등기제도 구축을 중심으로 한 호적관리제도 개혁을 대거 추진 ② 농업호구, 비농업호구의 이원 호구차별을 점차 없애 국민의 신분 평등을 실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8년 10월에 소집된 중국공산당 제17기 3차 전원회의는 2020년에 도농 경제사회발전 일체화 체제를 기본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중국 농촌 개혁발전 기본과제의 하나로 확정했다.

Copyright by China Pictorial © 2000-2002 ALL RIGHTS RESERVED
Reproduction in whole or in part without permission is prohibited.

Director E-mail:xubu61@163.com
Add:33 Chegongzhuang Xilu, Haidian District, Beijing 100044, China
Questions, Comments, or Suggestions? Please send to:
cnpictor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