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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저우진(周瑾) 그림/돤워이(段崴)
베이징(北京)에서 시닝(西寧)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시닝에 도착할 무렵, 비행기 창을 통해 내다본 곳은 말 그대로 산맥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맥들은 마치 이 고장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가려버리는 병풍처럼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는 듯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금빛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이 곳의 유채화는 장시성(江西省) 우웬(婺源)의 유채꽃과는 피는 시기가 다르다. 칭하이 북부지역의 1만무나 되는 유채 밭은 7월이 되어야 개화의 계절을 맞는다고 한다. 이 곳의 유채꽃은 또 특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웬(婺源)의 유채화를 중국의 섬세한 산수화라고 본다면 이 곳의 유채화는 산간지대, 길가, 계곡 등 곳곳에 마구 뿌려 놓은 서양 유채화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황하라는 이름만 들어도 모래가 섞인 혼탁한 누런 황토 물이 연상된다. 이런 인식은 벌써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새겨져 버렸다. 그래서“황하 물 한 공기에 모래가 절반”이라는 말도 있다. 반대로 칭하이성 꾸이더(貴德)현을 지나는 황하는 맑고 푸르러‘칭하이의 황하는 푸르다 (黃河之水靑海淸)’는 미명을 가지고 있다.
오색토(五色土)의 신기한 손짓
시닝에서 꾸이더로 가는 데는 무려 2시간 반이 걸린다. 차창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전형적인 초원풍경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 양 옆은 온통 풀밭이고 곳곳에는 소와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들이 보인다.
해발 3820m인 라지산(拉脊山)의 산 어귀에 들어서면서 일행은 차를 세우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두서너 발짝 뛰어보니 숨이 찬다. 동행한 몇 명의 여자들은 입술이 파래지고 가슴이 답답한 산소결핍 증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라지산은 랍계산(拉鷄山)을 음역한 말이다. 이 곳은 풀숲에 손만 넣으면 꿩이 잡힌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허리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 정상은 오랜 세월 쌓여온 적설로 뒤덮여 아름답기 그지없다.정오가 되니 햇빛에이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조차 없었다. 계곡에는 보일 듯 말듯 가느다란 물줄기가 졸졸 흐르고 있다. 적설이 녹은 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물줄기인 듯 하다. 직접 이 곳에 오니까 왜 칭하이라는 곳을‘다메이(大美)’라고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범하고 광활한 칭하이의 풍경에는 중국 양쯔강(长江)이남 지역의 물과 다리가 어우러진 아담하고 수려함 대신에 청장고원(靑藏高原) 특유의 호기와 장려함이 담겨져 있다.
산기슭 허황구디(河湟谷地:황하와 황수湟水 유역의 비옥한 지대)의 버드나무는 신록이 한창이고 밭의 밀보리도 사람 무릎까지 자랐는데 산 정상에는 마치 겨울이 되기라도 한 듯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듯하다. 산기슭에서 산허리, 산 정상에 이르는 한 시간 반 동안에 우리는 봄, 가을, 겨울의 세 계절을 넘나들면서 해발이란 단어를 직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시닝에서 꾸이더로 가는 길은 오색토가 가장 인상적이다.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황색과 단샤지형 (丹霞地貌, 카스트 지형)의 홍색, 풍화작용으로 돌덩이가 검푸르게 변한 청색, 그 외 흑색, 백색으로 이루어진 오색토가 눈앞에 펼쳐진다. 베이징 중산공원(中山)공원의 오색토제단 외에 이 곳에서만 오색토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꾸이더(貴德)의 황하(黃河)는 맑고 푸르다
꾸이더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어린이가 꾸이더 관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나는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황하의 물을 보았다’고 후기를 적어 선생님한테 제출했다. 선생님은 이 후기에 빨간 펜으로 큰 가위표를 했다. 황하의 물이 누런색이란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도 만약 꾸이더에 가 봤다면 그 글을 믿었을 것이다.
꾸이더는 2년 전부터 해마다 6월 중순이 되면 황하 강변에서‘국제 물과 생명의 뮤지컬’을 열고 있다.
음악회는 물과 생명의 융합, 인류와 자연의 화합을 노래한다. 해마다 갠지스강, 볼가강, 라인강, 도나우강, 미시시피강, 아마존강 등 세계 유명한 하천유역에서 여러 나라의 유명한 성악가들을 초청하여 이 같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그 음악회서는 하천을 주제로 노래를 부른다. 올해는 세계 3대 테너의 한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가 아름다운 황하 강변에서 중국어로‘그 머나먼 곳에서(在那遙遠的地方)’라는 칭하이 민요를 불렀다.
중국의 양쯔강(長江), 황하, 란창강(瀾滄江)은 모두 칭하이에서 발원한다. 이렇게 많은 명산과 큰 하천들이 모이고 한 발원지에서 세 갈래의 큰 강이 이뤄진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칭하이는‘중국의 급수탑’으로 불린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인 쉬(徐)씨는 칭하이 시민들은 환경에 대한 의식이 몸에 배어있다고 소개했다. 쉬씨는“황하나 양쯔강 상류의 천연 보호림이 잘 보호 되지 않았더라면 칭하이의 황하도 어김없이 혼탁했을 것이다. 칭하이호는 매년 그 수위가 낮아지고 있는데 이는 육지화 현상의 진행으로 인한 결과다. 정부는 생태보호 작업으로 호숫가 삼림건설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칭하이에 머무는 동안에 우리는 공장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을 보지 못했다. 칭하이 시민들이 자기들의 땅을 아끼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몇 년, 수십 년 내지는 여러 세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칭하이의 개발은 아름다운 환경 유지부터 우선으로 하고 있다.
배꽃 그리고 옥황각(玉皇閣)
칭하이성 동부에 위치한 꾸이더는 해남장족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 소속이다. 칭하이는 하이동주(海東州)와 하이난주(海南州)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여기에서 하이(海)는 칭하이호를 가리키고 동, 서, 남, 북의 방향은 칭하이호를 기준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이미 명나라 때부터 벌써 이곳에서 과일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皇帝) 집권 시기의 고서인「하주지(河州志)」에는 꾸이더는‘수전이 많은 곳’이며 과일 중에는‘꾸이더 배(長把梨)’가 가장 유명하여 꾸이더의 대명사로 불린다고 기재되어 있다.
현지인이 100 년 이상 된 배나무가 있는 농가로 우리를 안내했다.‘삼일원(三一園)’이란 이 농가 정원에는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배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고 있었다. 배꽃이 지고 난 가지에는 설익은 열매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주변에서 휴가나 피서 차 온 사람들이 나무 그늘 밑에서 한가하게 차를 마시면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해마다 4월 중순이면 배꽃축제가 열린다고 정원 주인이 소개한다. 그 때는 배나무 정원이나 숲 혹은 강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활 쏘기 경기를 하는 등 다양한 분위기로 관광객을 맞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고 나서 우리는 고성을 거쳐 옥황각으로 향했다.
옥황각은 꾸이더현의 대표적인 명청(明淸) 시기 건축물이다. 옥황각은 1589년, 즉 명조 17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기재가 있다. 1837년에 재건된 옥황각은 전쟁으로 한때 무너졌었다. 현재의 건축물들은 19세기 말기에 재건된 것들이다.
옥황각은 건평이 4915㎡나 된다. 사당과 이웃하고 있어서 여기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 등 중국 3대 종교적 특색의 건축물을 접할 수 있다. 건축물들은 중심축에서 좌, 우가 대칭되게 이어지면서 중국 전통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간쑤성(甘肅省)이나 칭하이의 전형적인 건축물들이다. 이런 배치는 중국에서는 유일해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해발3000m의 고원 호수 칭하이호
칭하이성이라는 이름은 칭하이호에서 왔다.
시닝을 빠져 나와 청장철도(靑藏鐵路: 칭하이-티벳 철도)를 따라 130여 km 지나면 파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칭하이호다.
칭하이호는 지각변동으로 형성된 호수다. 천만년 전의 이 곳은 황하의 지류만 흐르는 곳이었다. 그 후 지각변동으로 인해 동쪽에서 일월산(日月山)이 융기되어 하천을 가로 막으면서 호수가 형성됐다.
면적이 4635㎢나 되는 칭하이호는 중국에서 가장 큰 내륙호수다. 호수를 한바퀴 돌자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해발 3000여 m의 고원에 위치한 칭하이호는 그 높이가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태산보다 두 배 높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15℃ 정도 되는 이 곳은 이상적인 피서지다.
칭하이호는 그 호수 물이 날씨 조건에 따라 일곱 가지 색깔로 변한다고 하여 칠채호(七彩湖)라고도 불린다. 해가 뜰 무렵이면 황금빛, 날씨가 개인 날에는 진 푸른 빛, 먹장구름이 뒤덮여 있을 때는 검은 빛, 해가 지면서 붉은 노을이 낄 때면 붉은빛 등으로 그 색갈이 변한다.
칭하이호가 그토록 맑은 것은 주변 시민들이 잘 지켜주기 때문이다. 칭하이호 주변의 섬에서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페트병과 음식 포장용 주머니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며 반드시 배에서 가지고 내려야 한다.
칭하이호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다. 봄이 되면 큰 검은 머리 갈매기, 인도기러기, 물 수리, 갈색머리 갈매기와 이름도 모를 철새들이 인도나 파키스탄, 미얀마, 네팔 등 나라에서 이곳으로 날아와 알을 낳고 겨울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겨울을 난다. 이는 해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이다. 칭하이호에서 새를 보려면 5월이 제일 좋다. 그 때 새섬(鳥島)에 올라 개펄이나 풀숲을 바라보면 철새들이 하얗게 뒤덮여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칭하이호에는 호수알몸잉어(裸鯉)라고 하는 신비한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이는 칭하이호에 사는 유일한 어류이기도 하다. 잉어과에 속하는 호수알몸잉어는 비늘이 진화되어 없어졌다. 평균기온이 낮은 칭하이호에서 살고 있는 호수알몸잉어는 그 생장 속도가 하도 느려서“ 1년에 1cm 자란다”는 말도 있다. 이렇듯 희귀한 호수알몸잉어를 보호하기 위해 칭하이성은 10년 전에 어획금지령을 내렸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호수알몸잉어는 호수 주변의 생물 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다.
타얼사(塔爾寺)와 버터조각상(酥油花)
티베트 불교교도들은 황중현(湟中縣)의 타얼사를 티베트 불교 게룩파(황교)의 창설자 총카파(Tsongkhapa)가 태어난 곳이라고 믿고 있다. 이 곳에는 총카파의 어머니가 물을 지고 가다가 휴식하던 돌이 있다. 총카파가 태어나면서 그 탯줄에서 흘러내린 피가 스며든 땅 위에 보리수나무가 자랐는데 나무에는 10만개의 잎에 매 잎마다 사자후불상(獅子吼佛像: 석가모니상의 한가지)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다.
타얼사는 탑이 먼저 서고 사원이 생겼다 한다. 이 사원에는 또 이런 실화가 전해지고 있다. 총카파는 세살 되던 해에 수계하여 일곱 살에 출가했다. 성품이 남달랐던 총카파는 남들이 수십 년 내지 평생을 공부해야만 터득할 수 있었던 현교(顯宗)와 밀교(密宗)를 5년 만에 독파해냈다. 총카파가 라싸로 수련을 떠나자 아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는 흰머리 한 줌과 편지를 띄워 총카파가 집에 돌아오길 바랬다. 그 때 라싸와 칭하이 사이는 수천km나 떨어져 있어서 걸어가려면 왕복 3년은 걸렸다. 불법을 발양하기 위해 총카파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참고 칭하이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한테 각각 자화상과 사자후불상을 그린 그림에 편지를 첨부하여 “내가 태어난 곳에 십만 개의 사자후불상과 보리수(총카파가 태어난 곳의 보리수)를 심어 불탑을 건설하면 나를 만나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인 1379년, 총카파의 어머니는 신도의 도움으로 보리수 주변에 마니퇴(瑪尼堆: 돌덩어리와 석판을 쌓아 만든 제단으로 흔히 육자진언 (六字眞言), 혜안(慧眼), 신상조상(神像造像) 등 상서로움을 뜻하는 여러 가지 그림을 새겨 넣는다)를 만들었다. 그 후 소문이 전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돌을 얹어놓고 그림을 새겨 넣으면서 점차 탑이 쌓아졌다. 탑이 쌓아진 후에야 사원이 생겼다.
지금 타얼사에는 대금와사(大金瓦寺), 소금와사(小金瓦寺), 구간전(九間殿). 여의탑(如意塔), 태평탑(太平塔) 등 크고 작은 건축물과 정원이 1000여 개나 있고 규모가 거대한 궁전(宮殿), 불당(佛堂), 습경당(習經堂), 활불(活佛)의 침궁(寢宮), 라마승도들의 숙소 등이 있다. 이 곳은 티베트불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티베트족 지식인을 육성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사원에는 현교, 밀교, 천문 의학 등 4대 학원이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4월, 6월과 9월이 되면 이 곳에서는 기도축제인 몬람 축제가 열린다.
사원에서 모시는 제10대 판첸알터니췌지젠찬 상 앞에서 가이드 샤오멍(小孟)은 제10대 판첸라마가 살아있을 때의 장거를 이야기했다. 제10대 판첸라마는 타시룸포에서 제5대부터 제9대의 판첸라마를 합장(合葬)한 영탑에 개광식을 치를 때 벌써 자신이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 판첸라마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였으므로 주변에서는 신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복을 내리는 행사를 줄이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판첸라마는 5만 명의 신도들에게 복을 하사하는 것을 멈추지 않다가 마침내 과로로 심장병이 도져 5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버터조각상은 벽화, 압화(堆綉)와 함께 칭하이 타얼사 3대 예술의 하나로 불리고 있다. 밀가루 인형 같은 버터조각상은 사실은 버터를 원료로 만든 여러 가지 불상, 사람, 산과 물, 누각, 동물(飛禽走獸)과 화초, 수목을 만들어 놓은 정교한 예술품이다. 이런 버터조각상은 1~2m나 되는 것도 있고 10~20mm밖에 안 되는 것들도 있다. 버터조각상의 인물은 그 모습이 살아 움직이듯 한데 거기에 밝은 빛깔의 꽃과 금은 장식까지 해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였다.
총카파가 티베트에서 기원의 대법회를 가질 즈음 버터로 금수 조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꿨다. 그 후 그는 승려들을 데려다 꿈에 본 내용을 버터로 조각하게 해 활불에게 바쳤다는 전설도 있다.
버터조각상은 혹한의 겨울에만 제작할 수 있다고 해서 일부에서는 ‘잔혹한 예술’이라고 한다. 버터는 그 융점(融点)이 너무 낮아서 30도나 되는 인체의 체온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독실한 신도들은 살을 에는 차가운 얼음물에 손을 담그거나 얼음에 대고 있다가 버터조각상을 만든다. 온도를 유지하려면 손이 조금만 온기를 회복해도 다시 얼음물에 담가야 한다. 기후의 영향 때문에 1, 2년에 한번씩은 반드시 조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버터조각을 완성한 승려들의 손은 반드시 동상에 걸리거나 괴사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사람은 일반인들이다. 기예가 뛰어난 신도들의 신앙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 있기에 이토록 뛰어난 버터조각을 전승시켜 나갈 수 있다.